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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안, 낌따이촌에서의​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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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2월, 빈딘성의 빈안낌따이촌에서

많은 민간인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팜티흐엉 씨(77)는 여동생을 비롯한 친인척 10여 명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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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티흐엉 씨의

​이야기

Phạm Thị Hường / 빈안 학살 유가족

1966년 학살 당일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한국군과 우리 지역 유격대가 교전을 벌이고 며칠 뒤, 화가 난 한국군들이 우리 마을을 수색했습니다. 여동생은 친척들의 방공호에 몸을 숨겼지만, 한국군에게 발각돼 논밭으로 끌려가 수류탄과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저는 유격대 방공호에 숨었고, 한국군들에게 발각되지 않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총격이 끝난 후 마을로 돌아가 여동생과 친척들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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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학살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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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며칠 뒤 한국군이 다시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당시 저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저희 삼촌은 방공호에 숨으셨다가 발각돼 돌아가셨어요. 두 번째 학살로 18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삼촌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학살 이후 후유증은 없으셨나요?

"5~6년 전까지만해도 악몽을 자주 꿨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한국군에게 떼죽임당하거나 여성들이 강간당하는 장면이 종종 꿈에 나타났어요. 위령제에 참여할 때마다 그날의 끔찍한 장면과 가족을 잃은 고통이 떠올라 마음이 아주 아픕니다."

한국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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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라요."

낌따이촌 위령관과

​증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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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낌따이 학살 추모 사당

1985년, 낌따이 마을에 증오비증오탑이 세워졌습니다.

이후 2016년 학살 50주기를 맞아 낌따이 학살 위령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증오비가 있던 곳에는 추모 사당, 위령비, 집단 묘지가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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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낌따이 학살 집단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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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낌따이 학살 위령비

​"chứng tích căm thù"

; 적개심의 증거물

​▲ 낌따이 학살 증오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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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기획 | 이규림 최수지   글 | 이규림 최수지   인터랙티브 | 이규림 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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