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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응아이성에서의​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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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2월, 베트남 꽝응아이성의 빈호아에서 일어난 학살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이로 인해 쯔엉반쯕 씨(66)는 수류탄에 다리를 크게 다쳤고,

도안티언 씨(69)는 할머니와 어머니, 여동생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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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엉반쯕 씨의

​이야기

Trương Văn Chức / 빈호아 학살 생존자

당시 상황을 기억하시나요?

“우리 마을에는 노인, 여성, 그리고 아이들만 남아있었어요. 어느날 한국군이 갑자기 모든 사람들을 우물 앞으로 불러내 벌판으로 끌고갔습니다. 그곳에서 한국군은 주민들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어요. 제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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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사람들이 모여있던 우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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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이 일어났던 자리에는

이후 위령비가 세워졌어요."

"비석에는 사망자들의 이름과 성별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 제 어머니와 여동생 이름도 있어요.”

후유증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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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당시 수류탄 때문에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2009년에 파편 제거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통증이 느껴집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은 잊고 싶지만, 가끔 학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가족을 잃은 고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어요.”

도안티언 씨의

​이야기

Đoàn Thị Ơn

/

빈호아 학살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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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그날 저는 물소를 돌보러 마을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무사했지만 학살로 제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이 목숨을 잃었고 남동생 둘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남동생 도안년은 허벅지와 엉덩이를 다쳤고, 막내 남동생 도안응이아는 총격 당시 어머니의 배 밑에 깔려 있을 때 탄약이 섞인 빗물이 눈에 들어가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당시 심정이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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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이 불타고 가족들은 숨진 채였어요. 하루아침에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이제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요.”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쟁은 이미 끝나고 과거는 지난 일이에요. 한국인, 베트남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요. 더 이상 두 나라가 전쟁으로 싸우지 않으면 좋겠어요."

빈호아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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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호아 증오비는 한국군에 대한 증오가 담긴 비석으로,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구와 학살 피해 현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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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전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한국군의 학살 사실을 베트남의 젊은 세대에게 알리기 위해 증오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 [빈딘성의 학살]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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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기획 | 이규림 최수지   글 | 이규림 최수지   인터랙티브 | 이규림 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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